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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와 현실 사이에서

           -김태연식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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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myth)는 세계를 해설해주는 오래된 도구이자 인간이 어떻게 세계를 보는 가에 대한 다양한 방법들의 모음이다. 세계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어떻게 움직는지, 인간이란 그 안에서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러주고 설명해주는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는 인간에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감소 시키고, 세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가져다 주는 수단이었다. 신화는 종교와 과학과 다른 모든 학문, 혹은 인간이 하는 일들과 마찬가지로 세계 내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그림 역시 말하기의 한 방법으로 늘 자신과 삶과, 세계에 관해 이야기 한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어서 어떤 말은 더 탁월하고, 의미 있을 수는 있지만 한 개인에게 그 말하기의 가치란 거의 동등할 것이다. 김태연은 그런 말하기의 방식을 오래 익힌 다음 여러 해 동안 침묵했다. 물론 그 침묵은 자발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선택, 사회적 관습, 현실 삶의 복잡하고 어려움 때문이었다. 그 침묵의 시간이 끝 났을 때, 드디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고,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모를게 되기 쉽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의 표현대로 강물을 거꾸로 쏟아붓는 것과 같아서 제어가 안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경우 사실상 제어 자체가 의미가 없다. 김태연도 마찬가지다. 두 어번의 전시를 통해 그 말들을 쏟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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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말하기에도 일종의 신화가 있다. 미술사가 그것이다. 아놀드 하우저 말대로 ‘아무리 탁월한 개인이라도 거리를 두고 보면 시대적 조류를 나르는 한 운반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은 탁견이다. 그것은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설사 그가 다빈치라 해도 르네상스적 조류 밖에 있지는 않은 것이다.

     김태연은 그 신화로 추상표현주의 혹은 모던한 추상을 선택하고 다른 한 축으로는 그리이스와 종교적인 신화들과 생태적 이념들을 선택한다. 두 개, 혹은 선택이 만나 이루는 화면들은 표현적이 된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물감들은 쌓이고, 갈라지고 일종의 상징적인 마음의 밭을 이룬다. 제목이 무엇이든, 내용이 어찌 되었던 김태연의 그림들은 자신의 마음이고, 세계이고 현실이자 상징이다. 거기에는 물감과 흙과 지나온 시간들이 겹으로 쌓인다. 그 쌓인 세계 틈틈이 신화적, 혹은 시적 상징들이 편입 된다. 그 편입들은 그림을 좀 더 중층적이고 복잡하게 만들지만 한편으로는 약간의 과잉을 불러온다. 그 과잉들이 사실은 개인적으로 흥미롭다. 초기의 과잉이 그 나름의 역할을 하고 어떻게 변하는 가를 보는 것이 어쩌면 김태연 그림을 보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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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의 김태연의 그림은 그 과잉에서 벗어나 간략해지고 집중력이 높아졌다. 물론 모든 작업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이 명료함과 시긱적 흥미를 획득했다. 특히 가장 큰 대작은 가로로 긴 대형 캔버스을 이은 화면 구성, 공간을 살린 배치와 물감들의 적절한 위치 배분 등으로 일종의 김태연 다움을 만들어 냈다. 거기에 많은 산에 다니면서 마주친 돌들의 형상이 들어가 현실과 이념, 혹은 추상 사이에 쌓인 일종의 탑을 만든다.


     실제로 돌탑을 닮은 모습으로 그려진 이미지들은 세상의 모든 탑들의 원형이자 궁극적인 탑의 모습이다. 마음을 모아 소원을 빌었건, 무심히 쌓았건 탑이란 중력이라는 물리적인 원칙에 반해 인간이 쌓아 올린 의도적 흔적이다. 그 흔적이 개인적일 때 등산로 입구에서 흔히 보는 작은 돌탑들의 무더기를 이루고, 종교를 만나면 잘 다듬어진 형식과 예술성을 띤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종교성은 사라지고 문화재적 가치를 획득하게 되지만 그 내부에 들어 있는 기원과, 기복과, 뜻대로 움지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어떤 원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즉 돌덩어리에서 건축이라는 이름의 구조물로 전환되는 단계, 혹은 점이 지대에 있는 김태연의 돌탑, 돌덩어리 이미지들은 자신이 형성해낸 일종의 신화적 상징물이다. 신화적 상징이라는 말이 지나치게 무겁고 구태의연하다면 김태연의 말하기, 담화, 혹은 파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파롤(Parole)은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개인적인 발화를 의미한다. 랑그(Langue)라는 이름의 공적인 언어들을 개인화해서 말하는 것, 즉 우리가 쓰는 보통의 말인 것이다. 그러므로 문법, 언어의 공통 규칙에 해당되는 랑그는 수 많은 개인이 말하는 파롤로 전환 되어야만 의미가 획득되고, 의사 소통이 가능해진다. 

     그림도 회화, 모든 예술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관습과 개인화 사이에서 뭔가를 만들고, 그리고, 짓고, 노래한다. 언어학과 다른 점은 언어학이 너무 다양한 파롤이 아닌 랑그를 연구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 비해 회화는 파롤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언어를 발 하는 도정이 그대로 화면에 남는 것이 그림이다. 그림은 사진이나 건축 같은 매체와 달리 완성된 모습과 동시에 그 프로세스가 화면에 고스란히 남는다. 그러므로 사용된 재료와 사고, 감정의 흔적이 여러 번 다시 쓰는 양피지 위에 쓴다는 의미의 팔랑프세스트(palimpseste)처럼 기록 된다. 

     롤랑 바르트는 사이 톰블리에 그림에 관해 쓰면서 그림을 이탈리아 풍의 연극으로 간주 한다. 그리고 캔버스라는 무대 위에 사실(pragma), 우연(tyche), 결말(telos), 놀라움(apodeston), 행위(drama))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때 사실은 사용된 재료와 습관이고, 우연은 캔버스에서 우연히 발생하는 사건이며, 결말은 표제의 부정성과 효과, 놀라움은 선적인 태도와 동양적인 교훈, 행위는 행위와 주체라고 한다. 물론 톰블리의 그림에 대한 그의 견해를 그대로 김태연의 그림에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용은 달라도 이상의 프로세스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김태연의 그림에서 사실은 당연히 물감과, 흙과 오브제들이다. 캔버스 역시 하나의 사실이면서 그것들은 평면, 사각기둥형 육면체 등의 다양한 형식을 하고 있다. 물감과 다른 재료들은 한편으로는 필연적이면서 동시에 우연히 거기에 달라붙는다. 그 달라붙은 결과물들은 때로는 고통스러운 비명이 잠재되어 있고 다른 한편은 산책이나 산행처럼 가볍고 즐겁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김태연의 그림 역시 그 사이를 배회한다. 즉 행위의 주체로서 작가 김태연이 사실들 사이를 오가며 우연과 놀라움을 통해 열린 결말들을 생성해내고 있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그림과 현실 사이, 산들과 작업실 사이를 배회하는 것과 겹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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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묵힌 작업들을 쏟아 내는 과정에 있는 김태연의 그림은 이제 진짜 시작으로 보인다. 하고 싶었던 말, 가슴에 쌓여 부엽토처럼 익은 말들을 일단 퍼내고 자신의 언어와 말하는 방식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돌탑은 그런 한 예시에 지나지 않는다. 더 멀리는 추상의 심연까지 가볼 필요도 있고, 현실의 경험을 신화화 상징을 벗어나게 해 멀리 보내버릴 필요도 있을 것이다. 

     결국 회화도 하나의 여행이고 그 여행은 문화적 관습들과 양식의 개인적 재현이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부정이다. 그런 점에는 늘 상호 텍스트적인 실천인 그림은 항상 다면적이다. 한편으로는 삶에 대한 반영이자 긍정이고 부정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미술사와 문화에 대해서 그렇다. 

     이 관계들은 늘 변증법적이고 복합적이며 사막에 발자국을 찍어 길을 내는 것과 유사하다. 앞으로 김태연의 붓을 들고 일종의 주술사처럼, 혹은 여행자처럼 어떤 길을 내 갈 것인지 지켜보는 것은 아주 흥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강홍구. 작가  


    2022.12.1 ~ 12. 16

    유니온아트 갤러리오엔 미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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